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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이 넘은 영화인데도 지금 봐도 신선했다
사실 처음에는 오래된 SF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특수효과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투박할 거라고 생각했고, 당시 기술로 만든 영화라 금방 지루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괴물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했던 한 사람이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지를 담고 있었고, 그 안에는 생각보다 슬픈 사랑 이야기까지 들어 있었다.
줄거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은행 강도 사건
영화는 한 은행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강도 사건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굳게 잠겨 있던 금고가 저절로 열리고 거액의 현금이 사라진다. 경찰은 곧바로 도주 차량을 추격하지만 절벽 아래로 떨어진 차량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사건을 맡은 형사 오카모토는 주변을 수색하다가 일본 무용 명가였던 카스가 가문의 저택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무용수 후지 치요를 만나게 되고, 이 만남이 사건의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
두 번째 사건, 모든 의심은 후지 치요에게 향한다
며칠 뒤 또 다른 은행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번에는 밀실 상태였던 금고에서 돈이 사라졌고, 안에 있던 직원은 의문의 가스에 질식해 목숨을 잃는다. 단순한 절도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범죄가 이어지자 경찰은 후지 치요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녀의 집에서는 도난당한 돈과 일련번호가 같은 지폐가 발견되고 후지 치요는 체포된다. 모든 퍼즐이 맞춰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건은 여기서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가스인간
갑자기 미즈노라는 남자가 경찰서를 찾아와 자신이 은행 강도라고 자백한다. 처음에는 허풍처럼 들렸지만 그는 경찰과 기자들을 은행으로 데려간 뒤 자신의 몸을 가스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직접 보여 준다.
벽을 통과하고 금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당시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신선했다. 사람들은 충격에 빠지고 세상은 처음으로 '가스인간'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
괴물은 처음부터 괴물이 아니었다
미즈노는 후지 치요를 탈출시키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며 거절한다. 이후 그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원래 미즈노는 평범한 도서관 사서였다.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던 그는 높은 보수를 준다는 말에 우주비행사 육성을 위한 인체 실험에 참여한다. 하지만 실험은 실패했고, 그의 몸은 자유롭게 가스로 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갑자기 괴물이 된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노 박사를 죽이고 세상에 대한 분노를 품은 채 살아간다. 영화를 보다 보니 미즈노는 악당이라기보다 삶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피해자처럼 느껴졌다.
사랑을 위해 선택한 잘못된 방법
후지 치요는 자신이 받은 후원금이 미즈노가 은행을 턴 돈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미즈노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무대에 세우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그 방법으로 은행 강도를 선택했다고 털어놓는다.
후지 치요는 그의 마음은 이해했지만 범죄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지만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는 현실이 점점 선명해진다.
마지막 무대
경찰은 미즈노가 공연장에 나타날 것이라 예상하고 함정을 준비한다. 가스 상태인 미즈노를 제거하기 위한 폭발 장치까지 설치하며 마지막 작전을 시작하지만 후지 치요가 미리 경찰의 계획을 눈치채고 기폭 장치를 제거하면서 실패로 돌아간다.
공연이 끝난 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 버린 상황이었다. 결국 후지 치요는 공연장에 직접 불을 붙이고, 가스로 변한 미즈노 역시 불길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두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감상평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가스인간이라는 능력보다 미즈노라는 사람이 먼저 떠올랐다. 처음에는 은행을 털고 사람까지 죽인 악당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그를 미워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장 마음이 쓰였던 장면은 미즈노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순간이었다. 원래는 평범한 도서관 사서였고, 돈이 필요해서 실험에 참여했다가 괴물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괜히 씁쓸했다. 누구나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선택을 한다. 그런데 그 선택 하나 때문에 평생 평범하게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 얼마나 절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도 떠올랐다.
예전에 회사에서 정말 힘든 시기가 있었다. 출근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손끝은 저릴 정도였고, 머리까지 아파왔다. 퇴근 시간이 기다려지는 것이 아니라 '내일 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런데 집 문을 열면 모든 게 조금씩 달라졌다. 아이들이 달려와 안기고, 딸이 웃으며 "아빠 왔어?"라고 말하는 순간 이상하게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은 그대로인데 버틸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미즈노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사람도 후지 치요 때문에 버틴 건 아닐까?'
세상을 향해서는 분노만 남았지만, 단 한 사람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은행을 털고, 위험한 선택까지 하면서도 결국 원하는 건 그녀가 다시 무대에서 춤추는 모습 하나였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물론 그의 행동이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범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 주고 싶은 마음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힘든 회사 생활도 참고 버텼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미즈노는 처음부터 악한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을 원망하게 된 이유도 있었고, 다시 살아갈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그 두 감정이 결국 같은 사람을 향하면서 비극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더 슬펐다.
핵심 포인트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영화가 가스인간의 능력을 자랑하는 데 집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특수효과는 분명 오래된 티가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능력을 통해 한 사람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미즈노와 사노 박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사노 박사는 연구를 위해 사람을 이용했고, 미즈노는 사랑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렸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목적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켰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힘을 가진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1960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도 놀라웠다. 처음에는 단순히 옛날 SF 영화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지금 리메이크를 해도 충분히 통할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넷플릭스에서 새롭게 시리즈로 제작한 이유도 이해가 갔다.
재미있는 영화는 시간이 지나면 내용부터 잊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 작품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가스인간 제1호는 나에게 그런 영화였다. 괴물 영화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에는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더 오래 남았다. 아마 시간이 지나도 미즈노라는 인물만큼은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